우리 집에는 약 서랍이 따로 있습니다. 해열제, 소화제, 지사제, 감기약, 연고까지 종류도 많고 양도 넉넉합니다.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이 서랍은 한 번도 비어 본 적이 없습니다. 약이 넉넉하게 있어야 마음이 놓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넉넉하게 사 두는 만큼 버려야 하는 약도 많았습니다. 사용기한이 지나거나 너무 오래되어 버려야 하는 약을 정리할 때마다 생각보다 일이 많다는 걸 느낍니다. 이번에 약 서랍을 정리하면서, 우리 집 약이 왜 이렇게 쌓였는지와 약을 언제까지 두고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를 찾아봤습니다.
꼭 주말에 아픈 아이들, 금요일에 받아 두던 감기약
저는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 걱정이 아이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게다가 아이들은 정말 자주 아팠습니다. 그래서 집에 약이 있어야 안심이 됐습니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은 꼭 주말에 아팠습니다. 병원이 문을 닫는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이 되면 열이 오르고 기침이 심해졌습니다. 몇 번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금요일이 되면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아이가 콧물을 조금 흘리거나 기침을 몇 번만 해도, 혹시 주말에 심해질까 봐 금요일에 미리 병원에 가서 감기약을 처방받아 두었습니다. 그런 일이 정말 많았습니다.
그러다 주말 동안 아이가 괜찮아지면 받아 둔 약은 그대로 남았습니다. 해열제와 소화제도 늘 넉넉하게 있어야 마음이 편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크고 나서는 해열진통제를 늘 넉넉하게 두고 있습니다. 큰아이는 [과민성대장 증상이 심했던 때]가 있어서 지사제와 미리 처방받아 둔 약도 함께 챙겨 두었습니다. 일부러 사 둔 약 말고도, 아파서 병원에서 처방받고 먹다 남은 약을 혹시 몰라 한동안 놔두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약 서랍은 점점 가득 찼습니다.
약에는 유통기한이 아니라 사용기한이 있었습니다
약을 정리하면서 늘 헷갈렸던 건 언제까지 두고 먹어도 되는지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약에도 유통기한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찾아보니 약에는 '사용기한'이 적혀 있었습니다. 유통기한은 팔 수 있는 기한이고, 사용기한은 약효와 안전성이 보장되는 기한입니다. 약국에서 산 상비약은 상자나 포장지에 사용기한이 적혀 있으니 그 날짜를 보면 됩니다.
문제는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었습니다. 처방약은 따로 사용기한이 적혀 있지 않은데, 기본적으로 처방받은 날수만큼이 복용 기한이었습니다. 3일 치를 처방받았다면 그 3일 동안 먹으라고 지어 준 약이라는 뜻입니다. 의사가 오래 보관하라고 한 경우가 아니라면 남은 약을 몇 달 뒤에 다시 먹는 건 권하지 않았습니다. 가루약은 습기를 먹으면 굳거나 색이 변할 수 있고, 아이들이 많이 먹는 시럽은 개봉하면 더 빨리 상하기 때문입니다. 항생제 시럽은 보관 기간이 1~2주 정도로 특히 짧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내용을 보니 금요일마다 받아 두었던 감기약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실 몇 주 뒤에 아이가 비슷한 증상을 보여도 집에 있는 약을 먹이지는 않았습니다. 겉으로는 비슷해 보여도 그때와 다른 증상이 있을까 봐 선뜻 먹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고, 그래야 저도 마음이 놓였습니다. 처방약은 그 주의 아이 증상에 맞춰 지어 준 약이라는 걸 찾아보고 나니, 그때 남은 약을 먹이지 않았던 게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해서 먹이지도 않을 약을 아깝다는 이유로 계속 쌓아 두었고, 결국 대부분은 버리게 됐습니다.
상비약을 보관하는 방법도 알게 됐습니다. 약은 원래 들어 있던 상자와 설명서를 버리지 말고 그대로 함께 두는 게 좋습니다. 상자를 버리고 약만 따로 모아 두면 사용기한도 알 수 없고 무슨 약인지도 헷갈리게 됩니다. 시럽이나 연고처럼 개봉한 날이 중요한 약은 뚜껑에 개봉한 날짜를 적어 두면 정리할 때 훨씬 편합니다.

알약을 하나하나 까서 모으는 일
약을 버리는 건 생각보다 보통 일이 아닙니다. 알약은 포장을 하나하나 까서 내용물만 모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버릴 약이 생기면 일단 비닐봉투 하나에 약 봉투째 모아 둡니다. 그때그때 정리하면 좋겠지만 손이 많이 가다 보니 늘 미루게 되고, 봉투가 어느 정도 차면 그제야 하나씩 꺼내서 알약을 눌러 빼고 정리합니다. 처방받은 가루약은 포장을 뜯지 않고 그대로 모으고, 시럽은 흘러나오지 않게 뚜껑을 꼭 닫아서 따로 담아 둡니다.
약을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에 그냥 버리면 안 되는 이유도 찾아봤습니다. 약이 땅에 묻히거나 물에 흘러가면 그 성분이 토양과 물을 오염시킵니다. 특히 항생제 성분이 자연에 흘러가면 항생제가 잘 듣지 않는 내성균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폐의약품은 폐건전지나 폐형광등처럼 '생활계 유해폐기물'로 따로 관리됩니다. 번거롭더라도 꼭 따로 모아서 버려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약을 버리는 게 지금보다 쉬웠습니다. 병원에 자주 가니 약국도 자주 갔고, 약을 받으러 가는 길에 모아 둔 약을 가져가면 됐습니다. 그때 다니던 약국에는 눈에 보이는 곳에 수거함이 있었고, 수거함이 안 보일 때도 여쭤보면 약사 선생님이 직접 받아서 처리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줄었고, 지금은 자주 다니는 약국이 따로 없습니다. 약을 사러 가는 것도 아닌데 버리려고 물어보기는 왠지 미안했습니다. 그래도 예전 생각이 나서 약국에 갈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요즘은 수거함이 눈에 띄지 않아서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찾아보니 모든 약국이 폐의약품을 받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지역마다 수거하는 곳이 다르니, 약국에 가져가려면 수거함이 있는지 미리 확인해 보는 게 좋습니다.
요즘은 행정복지센터에, 우체통은 아직 한 번도
요즘 저는 모아 둔 약을 행정복지센터에 가져갑니다. 예전에는 동사무소였고, 주민센터였다가, 지금은 행정복지센터라고 부르는데 이름이 하도 자주 바뀌어서 저도 가끔 헷갈립니다. 행정복지센터에는 폐건전지 수거함과 함께 폐의약품 수거함이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행정복지센터는 자주 갈 일이 없다 보니, 예전보다 한 번에 모아서 버리는 양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우리 동네 수거함 위치는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지역별로 찾아볼 수도 있었습니다.
우체통에 약을 넣어도 된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 찾아보니, 일부 지역에서 시행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행정복지센터나 보건소에서 주는 폐의약품 회수 봉투에 약을 담거나, 일반 봉투 겉면에 '폐의약품'이라고 적어서 밀봉한 뒤 우체통에 넣으면 됩니다. 다만 물약, 시럽, 안약, 연고처럼 흐르거나 새어 나올 수 있는 약은 다른 우편물을 망가뜨릴 수 있어서 우체통에 넣으면 안 됩니다. 지역마다 시행 여부가 다르니 우리 동네 우체통에 폐의약품 스티커가 붙어 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약 서랍을 정리하다 보니 그동안 제가 약을 사 둔 이유가 결국 불안이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약이 넉넉하게 있으면 아이가 아파도 금방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약들 중 상당수는 먹지도 않고 버려졌습니다. 그렇다고 상비약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해열제나 지사제처럼 갑자기 필요한 약은 지금도 집에 두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해 보려고 합니다. 상비약은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처방받고 남은 약은 오래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뀔 때 한 번씩 약 서랍을 열어 사용기한을 확인하고, 버릴 약은 미루지 않고 정리해 볼 생각입니다. 이번에 10년 넘게 둔 어성초 발효액을 버리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아까워서 두는 것보다 제때 정리하는 게 더 나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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